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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효 제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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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다하는 후회

김태보는 아버지의 죽음 후 후회하며 어머니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앞으로 잘하겠다고 다짐한다.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과거의 약속을 떠올리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표현한다.과연 김태보는 진정으로 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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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회차 리뷰

거짓된 효: 마당에 세워진 영정사진의 의미

오래된 목조 집의 문이 천천히 열릴 때, 그 안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젊은이가 어르신의 팔을 잡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 발걸음은 무거워 보인다. 이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벽에 걸린 헌책, 바닥에 놓인 짚신, 문틀에 걸린 빨래줄—모든 것이 ‘과거’를 증언한다. 그런데 그 과거 속에, 오늘의 비극이 자리 잡고 있다. 카메라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흔들리며, 탁자 위에 놓인 영정사진을 비춘다. 검은 리본이 묶인 사진 속 인물은 젊은이와 닮았고, 미소를 짓고 있다. 그 미소는 이 장면의 모든 긴장을 끌어올린다. 이 사진은 <사랑의 재발견>에서 등장하는 ‘이재훈’의 영정이며, 동시에 <그날의 기억>에서 언급된 ‘형’의 정체를 암시한다. 영정 앞에는 오렌지 네 개가 빨간 접시에 담겨 있고, 향로에서는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른다. 이 장면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그것은 ‘죄책감의 제단’이다. 젊은이는 사진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후회와 변명,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방어기제가 뒤섞여 있다. 어르신은 그를 바라보며, 손을 꼭 잡는다. 그 손길은 따뜻하지만, 그 안에는 ‘너를 믿고 싶다’는 간절함과 ‘너를 믿을 수 없다’는 두려움이 공존한다. 이 순간, 거짓된 효는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효도는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카메라가 다시 줌인하며, 젊은이의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흘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고개를 돌려 어르신을 바라본다. 그의 입이 열린다. “엄마…”라고 말하려는 순간, 배경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이 장면의 긴장을 일시적으로 해소시키지만,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낳는다. 왜 아이가 여기 있는가? 그 아이는 이 집의 새로운 주인인가, 아니면 과거의 유령인가? 이 질문은 관객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영정 사진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다. 그 미소는 이제 더 이상 따뜻하지 않다. 그것은 ‘너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는 경고처럼 보인다. 거짓된 효는 종종 가족의 이름 아래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은 가장 아름다운 단어처럼 들리지만, 실은 가장 무거운 죄의 덫이다. 이 장면은 <그날의 기억>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주인공이 형의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지만, 그 눈물은 후회가 아니라,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연기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번 작품도 비슷한 구도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섬세하다. 젊은이의 눈물은 아직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는 아직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어르신이 손을 놓는다. 그 손길의 분리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상징한다. 거짓된 효는 결국, 손을 놓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손을 잡고 있을 때부터, 속으로는 손을 놓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부터 시작된다. 이 장면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가족의 의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거짓된 효: 식탁 위의 한 접시 반찬이 말하는 것

오래된 나무 탁자 위에 놓인 한 접시 반찬. 그 안에는 고추와 콩나물, 그리고 조금의 고기 조각이 섞여 있다. 이 반찬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일상, 현재의 갈등, 미래의 예감을 모두 담고 있는 ‘증거물’이다. 젊은이가 어르신을 안내하며 집 안으로 들어서는 장면 이후, 카메라는 이 접시에 집중한다. 그 접시를 들고 있는 사람은 중년의 남성이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으며, 손짓으로 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조용히 다가와 그의 옆에 앉는다. 이 장면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카메라 앵글은 의도적으로 탁자의 아래쪽, 즉 ‘손목’과 ‘의자 다리’에 초점을 맞춘다. 왜일까? 그 이유는 곧 드러난다. 중년 남성이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말한다. “맛있게 먹어.” 그 목소리는 따뜻하지만, 그의 눈은 접시가 아닌, 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의 방향—그곳에는 젊은이가 서 있다. 이 순간, 우리는 이 반찬이 ‘누구를 위해 준비된 것인가’를 의심하게 된다. <사랑의 재발견>에서는 비슷한 장면이 있었는데,當時 주인공이 아버지의 생일상을 차리며, 그 상 위에 놓인 김치가 특별히 빨갛게 보였던 것이 나중에 그가 독약을 탄 것임을 암시했다. 이번 작품도 그런 미세한 단서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접시의 고추는 너무 빨갛다. 그 색은 자연스러운 고추의 빨강이 아니라, 인공적인 염료처럼 보인다. 이는 단순한 미장센이 아니다. 그것은 ‘위험’의 시각적 신호다. 아이는 반찬을 집어 먹는다. 그의 표정은 평온하다. 그러나 카메라는 그의 손가락 끝, 특히 엄지와 검지 사이에 묻은 작은 빨간 자국을 클로즈업한다. 그 자국은 고추가 아니라, 다른什么东西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 젊은이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입을 다문다. 그의 손이 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쥐고 있다. 그것은 휴대폰이 아니라, 작은 약병이다. 이 약병은 어르신이 나중에 꺼내어 그에게 건네는 물건과 동일하다. 즉, 이 장면은 이미 ‘미래’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된 효는 종종 식탁에서 시작된다. 식사라는 행위는 인간이 가장 자연스럽게 서로를 믿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깨질 때, 그 충격은 더 크다. 중년 남성은 아이에게 또 반찬을 덜어준다. 이번에는 더 많이. 그의 손놀림은 익숙해 보이지만, 약간 떨리고 있다. 이 떨림은 연기일 수 없다. 그것은 진짜 긴장이다. 카메라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중년 남성의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을 포착한다. 그는 이를 참으려는 듯, 입을 꽉 다문다. 이 순간, 우리는 이 반찬이 ‘사죄의 제물’일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날의 기억>에서 주인공이 형의 묘 앞에 음식을 올릴 때, 그 음식이 모두 뒤집혀져 있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진실이 뒤집혔다’는 상징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 반찬은 이미 뒤집혀 있다. 다만, 그것을 눈치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거짓된 효는 가장 따뜻한 순간에 가장 차가운 칼날을 품고 있다. 이 식탁은 그 칼날이 드러날 때까지, 모두를 속이는 무대다.

거짓된 효: 주머니 속 약병이 전하는 메시지

어르신이 분홍색 꽃무늬 셔츠의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만지는 순간, 카메라는 그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을 포착한다. 이 떨림은 단순한 노화가 아니다. 그것은 ‘비밀을 꺼내야 하는 순간’의 긴장이다. 그녀는 주머니 속에서 흰색 약병을 꺼낸다. 약병은 작고, 라벨이 찢겨 있다. 그녀는 그것을 바라보며, 잠깐 눈을 감는다. 이 장면은 <사랑의 재발견>의 핵심 장면을 연상시킨다. 당시 주인공이 어머니의 약을 훔쳐 확인하는 장면에서, 그 약병의 라벨이 ‘진통제’가 아니라 ‘항우울제’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어머니의 정신적 고통이 드러났다. 이번 작품도 비슷한 구도를 사용하지만, 더 교묘하다. 어르신이 꺼낸 약병은 라벨이 없고, 단지 흰색 캡만이 있다. 그녀는 그것을 젊은이에게 건넨다. 젊은이는 잠깐 망설인다. 그의 손이 약병을 받으려는 순간, 카메라는 그의 손등에 맺힌 작은 상처를 클로즈업한다. 그 상처는 최근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어디서 났을까? 아마도 어제 밤, 집에서 어떤 물건을 부수며 생긴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 상처는 그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암시한다. 어르신은 그의 손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고개는 ‘알고 있다’는 의미다. 거짓된 효는 종종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장면은 그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젊은이는 약병을 받아들고, 손바닥에 올려본다. 그의 눈은 약병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어르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에는 ‘왜 이제 주는가’,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담겨 있다. 어르신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천천히 주머니를 다시 닫는다. 그 동작은 매우 천천히 이루어진다. 마치 시간을 늦추려는 듯. 이 장면은 단순한 물품 전달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진실을 다시 열어보는 열쇠’를 건네는 순간이다. 약병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것은 단순한 약이 아니라, 수년간 쌓인 침묵과 후회,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희망의 조각이다. 카메라가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드러난다. 그 거리는 좁지 않다. 오히려, 그들 사이에는 탁자와 의자, 그리고 벽에 걸린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이 그들 사이의 ‘불가능한 거리’를 상징한다. 거짓된 효는 종종 ‘선물’의 형태로 나타난다. 선물은 사랑의 표현이지만, 이 경우 그것은 ‘사죄의 증거’다. <그날의 기억>에서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건넨 시계는, 사실은 아버지가 잃어버린 아들의 물건이었다. 그 시계는 선물이 아니라, 죄의 증거였다. 이번 약병도 마찬가지다. 어르신이 약병을 건낸 후, 그녀는 잠깐 미소 짓는다. 그 미소는 진심일 수도 있고, 연기일 수도 있다.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 미소는 젊은이의 얼굴을 더욱 굳게 만든다. 그는 약병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 동작은 매우 천천히 이루어진다. 마치 그 안에 든 진실을 최대한 늦추려는 듯. 이 순간, 거짓된 효는 완성된다. 효도는 약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그 약을 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이 장면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가족의 작은 선물’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거짓된 효: 영정사진 앞에서의 침묵이 말하는 것

영정사진 앞에 선 두 사람.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은 마치 폭풍 전의 고요처럼,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젊은이는 사진을 바라보며,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 그의 손가락은 약병을 쥐고 있다. 어르신은 그를 바라보며, 손을 꼭 잡고 있다. 이 장면은 <사랑의 재발견>의 클라이맥스를 연상시킨다. 당시 주인공이 형의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지만, 그 눈물은 후회가 아니라,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연기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번 작품도 비슷한 구도를 사용하고 있지만, 더 섬세하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발끝을 클로즈업한다. 젊은이의 신발 끈은 풀려 있다. 그는 그것을 고치지 않는다. 왜일까? 그것은 그가 이미 ‘정리’를 끝냈기 때문이다. 신발 끈은 삶의 연결고리다. 그것을 풀어놓는 것은, 어떤 관계를 끊으려는 의도의 표시일 수 있다. 어르신의 신발은 깨끗하지만, 뒤꿈치가 닳아 있다. 그녀는 오랫동안 걷고 있었다. 어디로? 아마도 병원과 이 집을 오가는 길일 것이다. 이 닳은 뒤꿈치는 그녀의 헌신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 헌신이 진실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거짓을 감추기 위한 것인지—그 질문은 이 장면에서 가장 강력하게 제기된다. 카메라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영정사진 속 인물의 눈을 비춘다. 그 눈은 미소 짓고 있지만, 그 미소는 약간 비뚤어져 있다. 이는 단순한 사진의 왜곡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이 왜곡되었다’는 상징이다. 젊은이는 그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아빠…” 그 한 마디가, 이 장면의 모든 긴장을 폭발시킨다. 그러나 그 다음 말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는 고개를 돌린다. 그의 시선은 문 쪽으로 향한다. 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다. 다만,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줄만이 보인다. 이 빨래줄은 <그날의 기억>에서 등장했던 ‘빨간 수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그 수건은 주인공이 형을 죽인 후, 그의 옷에 묻은 피를 닦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 이번 빨래줄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있다. 그 흔들림은, 과거의 사건이 아직도 이 공간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거짓된 효는 종종 ‘말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효도는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장면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관객에게 ‘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 어르신은 젊은이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 손길은 따뜻하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숨기지 말라’는 경고가 담겨 있다. 젊은이는 그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그의 눈꺼풀 뒤에는, 어제 밤 그가 발견한 편지의 글자가 떠오른다. ‘너는 우리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그가 죽도록 내버려뒀다.’ 이 문장은 이 장면의 모든 의미를 뒤집는다. 거짓된 효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다. 그것은 ‘부작위’의 죄다. 이 장면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가족의 침묵’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영정사진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다. 그 미소는 이제 더 이상 따뜻하지 않다. 그것은 ‘너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는 경고처럼 보인다.

거짓된 효: 마당에서의 마지막 대화가 예고하는 결말

마당의 흙바닥은 오래된 흔적들로 가득 차 있다. 나무 의자, 탁자, 벽에 걸린 짚모자—모든 것이 시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젊은이와 어르신이 서 있다. 그들 사이에는 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여전히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비춘다. 젊은이는 눈을 감고 있다. 그의 호흡은 깊다. 어르신은 그를 바라보며, 손을 내린다. 이 순간, 우리는 이 대화가 ‘마지막’임을 직감한다. <사랑의 재발견>에서는 비슷한 장면이 있었는데, 당시 주인공이 어머니와 마당에서 마지막 대화를 나눈 후,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그 문 닫는 소리는, 그들의 관계가 끝났다는 최후의 선고였다. 이번 작품도 그런 구도를 사용하고 있다. 어르신이 말한다. “너는 가야 해.” 그 목소리는 단호하지만, 떨리고 있다. 이는 그녀가 이미 결심했음을 의미한다. 젊은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다. 그는 말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 이유는 곧 드러난다. 카메라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며, 그의 발목을 비춘다. 그의 신발 끈은 여전히 풀려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끈 끝에 작은 흙이 묻어 있다. 그 흙은 이 마당의 흙과 같다. 그는 어제 밤, 이 마당에 무언가를 묻었을 가능성이 있다. 무엇을? 아마도 그가 어르신에게 건넨 약병의 빈 통일 것이다. 이 흙은 그의 죄를 묻는다. 거짓된 효는 종종 ‘지우려는 시도’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진실을 지우려고 하지만, 그 흔적은 땅속 깊이 스며들어, 언젠가 다시 피어오른다. 어르신이 다시 말한다. “너는 그를 사랑했지?” 이 질문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다. 그것은 ‘너는 그를 구하지 않았느냐’는 비난이다. 젊은이는 눈을 뜬다. 그의 눈동자는 흐릿하다. 그는 입을 연다. “…사랑했어요.” 그 한 마디가, 이 장면의 모든 긴장을 해소시키지만, 동시에 더 큰 공백을 낳는다. 사랑했지만, 구하지 않았다. 이 모순이 바로 ‘거짓된 효’의 본질이다. 효도는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의 책임이다. 카메라가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마당 전체가 드러난다. 문 쪽에는 아이가 서 있다.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손에는 작은 나뭇가지가 들려 있다. 그 나뭇가지는 어제 밤, 젊은이가 땅에 묻을 때 사용한 것과 같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장면은 <그날의 기억>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주인공이 도시로 떠나는 버스에 오를 때, 그의 뒤에서 아이가 나뭇가지를 흔들며 서 있었다. 그 나뭇가지는 ‘너의 죄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거짓된 효는 종종 다음 세대에게로 이어진다. 그 죄는 우리가 죽은 후에도, 아이들의 손끝에서 살아남는다. 젊은이는 어르신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그의 어깨가 떨린다. 이 떨림은 슬픔이 아니라, 해방의 시작일 수 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숨기지 않을 것이다. 이 장면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가족의 마지막 대화’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마당의 바람이 불며, 빨래줄이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과거가 아직도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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